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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예배와 창조주

 

8월 1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1분

 

● 연구 범위 : 시 115:1~8, 신 10:17~22, 시 101:1, 사 1:10~17, 사 58장, 막 12:38~40

 

● 기억절 :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구약의 선지서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학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을 대변하시는 하나님과 선지자들은 주변 국가에서 자행되는 것들을 보고 분개하였다(암 1~2장 참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분노와 함께 슬픔의 감정도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수많은 복 그리고 그분이 함께하신 역사를 고려한다면 이 백성들은 그분을 더 잘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이 항상 그분을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선지자들은 이런 애석한 상태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놀랍게도 공의와 불공정에 관해 유명한 여러 진술이 예배에 대한 문맥에서 나온다. 앞으로 보겠지만 진실한 예배는 단지 종교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녕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억압받으며 소외된 자들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통해서도 드려진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참된 예배는 단지 종교적인 행사가 아니라 이웃을 돌보는 우리의 진실한 삶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느끼기 :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영적인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슬퍼한다.

행하기 : 우리가 드리는 안식일 예배에 외적인 봉사활동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➋ 하나님은 사 1:10~17에서 우리의 예배가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까?

※ 예배는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라고 지적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활하라고 하신다. 

➌ 마 9:13에서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 사람들이 율법을 강조하면서 그 정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➍ 예수님이 마 23:23에서 지적하신 내용이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얼마나 해당될까요?

※ 깊이 반성하면서 율법의 중한 것을 깨닫고 생활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➎ 사 58:6~13을 참고했을 때 참된 안식일 성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구제와 봉사의 생활을 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결론 :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분의 성품을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한다면 당연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공유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면 단지 형식적인 종교 행사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 그분의 뜻을 이행하는 진실한 삶이 필요합니다.

 

 

8월 4일(일) 우상숭배와 압제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시 115:4~7).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뒤에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산에서 만나시고 문자 형태의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중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이 각각 첫째와 둘째 계명이었다(출 20:2~6 참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다(출 24:1~13).

그런 다음 모세는 거의 6주 동안 산에 올라가 있었고, 백성들은 그가 어떻게 됐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군중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고 이튿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출 32:6)았다. 하나님과 모세는 백성들이 신속하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이스라엘을 그에 대한 마땅한 징벌로부터 구한 것은 모세의 중재였다(출 32:30~34).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너무도 자주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졌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보면 우상숭배의 시기가 자주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부 사악한 왕들은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이끌었다. 그와 같은 외도(外道)는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반복적으로 설교하는 주제였다. 그런데 부흥과 개혁을 요구하는 그러한 호소에는 그들 중에 거하는 가난하고 궁핍하며 절망적인 자들을 선대하라는 호소도 자주 포함되었다.

 

1. 시 115:1~8을 읽어보라. 여기서 시편 기자가 강조하는 요점은 무엇인가?

[시115:1~8]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2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답: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인간은 자신이 섬기는 사물이나 사람을 닮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공의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전쟁 또는 풍요의 신으로 불리는 주변 민족의 신들을 경배할 때 타인과 공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다른 신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많은 것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되었고 그것에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포함되었다. 그들이 여호와께 신실했었다면 그들 중에 거하는 궁핍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공유했을 것이다.

 

<부가설명>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뢰하는 성질이 있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것이 발전하여 신앙본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종족이든 다 종교성이 있고 그들이 의지하는 신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두려움이나 곤란한 일을 당할 때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인간의 능력이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천연계 현상들을 의뢰하고 그 형상을 만들어 신이라고 경배한다. 그 신들은 인간들이 생각한 신들이다. 그들에게 객관적인 계시가 없다. 주관적이다. 이런 인간 본성에 쇄기를 박고 거기 빠지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이다. 모든 우상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결국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것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것을 닮아간다. 성경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닮으라고 권고한다. 

 

교훈 : 사람은 그가 섬기는 대상과 닮아간다. 공의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그분의 관심과 태도를 본받게 된다.

 

 

8월 5일(월) 예배의 이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신 10:20).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께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는 모습이 나오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격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과 그분의 여러 속성을 인하여 그분을 예배해야 한다. 그 속성들에는 그분의 선하심, 공의와 자비도 포함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십자가에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행하기로 약속하셨는지를 기억한다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 신 10:17~22, 시 101:1, 146:5~10, 사 5:16, 61:11을 읽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신10:17~22]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22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시101:1]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시146:5~10]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8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사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사61: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답: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해방하신 신중의 신이시며, 인자와 공의를 행하시며, 모든 일에 공평하시며, 의롭고 거룩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의지하고 경배하였다. 

 

그와 같은 예배의 이유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낯설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가장 열렬하게 예배한 것은 막 해방을 경험한 뒤였다. 그러한 예배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현격한 개입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와 미리암은 그들이 방금 목격한 구원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백성들을 인도했다(출 15장 참고).

그와 같은 사건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잊히면 안 되었다. 백성들이 이러한 일들을 정기적으로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그 경험을 생생하게 간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적과 공의가 이후 세대에도 그들의 예배에도 지속적으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재진술과 예배의 사례가 신 10:17~22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인격적인 영역이며 본질적인 성품의 핵심 요소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2).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공의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이것이 우리가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둘째,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백성과 가난하고 억눌린 모든 자들을 위한 그분의 공정하고 의로운 행위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단순히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욥 34:28)을 들으시며,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신다. 결국 이런 일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재창조하실 때에 온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부가설명> 지금도 여전하지만 특히 모세 시대와 전반적인 구약시대에는 열방들에 신들이 많았다. 하나님은 그런 신들이라고 열방들이 주장하는 것을 일단 인정하시고 성경의 하나님을 신들 중의 신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 이름을 나타내실 때에는 ‘유일하신 여호와’라고 분명히 계시하셨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실 수 있는 분은 성경의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선포하신 것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의 고유한 이름이다. 이 이름 자체가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름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오,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시며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며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의롭고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하고 의지하고 순복해야 할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히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능히 이렇게 경배할 수 있도록 이미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날마다 공급하신다. 호흡할 수 있도록 공기를 공급하시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식물과 음료를 공급하시고 의복을 공급하신다.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되 편벽되게 하시지 않으신다.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에게도 이런 모든 일에 공평하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본성을 깨닫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서 실현하는 존재로 경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일하시고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8월 6일(화) 종교적인 압제자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백성들이 성전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경배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그들의 예배는 종종 우상숭배나 주변 민족 종교와 혼합된 양상을 띠곤 했다. 선지서들에 따르면 그들이 기울인 최선의 신앙적인 노력조차 그 땅과 그들의 일상에 배어 있는 악행으로부터 그들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예배 의식을 통해서 신앙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찬양의 소리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울음소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아모스는 그 당시의 백성들을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암 8:4)로 묘사했다. 선지자의 눈에는 백성들이 빨리 종교 의식을 마치고 시장을 다시 열어서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암 8:6)는 부정직한 장사를 하고픈 속마음이 보였다.

 

1. 사 1:10~17, 암 5:21~24, 미 6:6~8을 읽어보라. 종교 의식에 관해서만 경건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사1:10~17]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암5:21~24]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답: 종교의식에 심취하지 말고 그 종교가 가르치는 진리를 생활에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실천이 없는 종교의식은 하나님께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거친 언어를 통해서 이웃의 고통과 억압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종교와 예배를 비웃으신다. 암 5:21~24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역겨워하신다. 그들의 모임에는 악취가 나며 그들의 헌물과 음악은 전혀 가치 없어서 배척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미가서 6장에는 그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에 관해서 점점 고조되는 조롱조의 제안이 나온다. 선지자는 먼저 번제를 드리자고 제안한다. 그다음 한술 더 떠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미 6:7) 드리자고 부추긴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를 얻기 위해 첫째 아들을 바치자는 끔찍하고 극단적인 희생 제사까지 제안해 본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께서 정말 그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임을 밝힌다.

 

<부가설명>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신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혀 신앙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약성경에 예배라고 번역된 말이 둘이 있다. 하나는 요한복음 4장 23,24에 기록된 ‘프로수쿠네오’이다. 다른 하나는 로마서 12장 1절에 기록된 영적예배라고 번역된 ‘라트레이아’이다. ‘프로스쿠네오’는 ‘예배, 경배’라고 번역되었다. 그런데 ‘라트레이아’는 제사의식과 관련된 단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서 12:1,2에 나타난 ‘라트레이아’의 설명을 보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제사는 짐승을 죽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생활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12장 이하를 읽으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즉 생활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생활예배가 공의와 동정과 사랑과 자비를 사람들 사이에 실천하는 것이다. 이 생활예배가 바르게 시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전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구역질나게 하는 것이라고 선지자들이 지적하였다. 우리가 ‘라트레이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프로스쿠네오’가 하나님을 피곤하게 하는 행사가 된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교훈 : 아무리 최고의 종교 의식을 통해서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할지라도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8월 7일(수) 예배하는 방법

 

예배와 공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선지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구제하고 도움이 절실한 자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예배의 중요한 일부라고 강조한다. 이사야 58장은 한 장 전체가 이러한 연관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이사야 58장을 읽어보라. 이 장의 초반부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사58:1~14]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답: 이스라엘이 종교의식에는 열심이었지만 그 정신을 생활하지는 않았다. 

 

앞서 보았듯이 이러한 비판은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가해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 방법에 변화를 시도하고,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보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그분에게 그들의 예배 방식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사 58:6) 아니겠는가? 또한 그들은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노숙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궁핍한 자들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러한 활동들이 예배의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백성들 중 일부가 선호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예배 행위보다 더 바람직한 예배의 한 형태로 그러한 활동을 권장하신다. 그렇다면 예배는 단지 마음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배자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진정한 목적은 죄의 짐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편협과 억압을 제거하고,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7권, 404).

사 58:8~12은 이런 형태의 예배에 반응할 때 이르러 오는 복을 약속한다. 하나님은 만약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덜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분이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그들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흥미롭게도 이 장은 이런 형태의 예배와 ‘기쁨’으로 충만한 안식일 준수와 갱신 사이를 연결시킨다. 우리는 이미 안식일과 사역 사이의 강력한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 장의 말씀은 예배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하나님의 복을 발견하라는 부르심 안에 이 두 활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자비와 자선의 사업을 하라는 책임이 지워져 있다”(구호봉사, 121).

 

<부가설명> 이사야 58장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준 말씀이다. 13, 14절 말씀을 우리는 잘 인용한다. 오락을 금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고 자기 길을 따라 가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1절부터 12절까지가 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다. 넷째 계명은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사야 58장은 엿새 동안 힘써 행할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신다. 이것을 행하지 않고 금식하는 등 종교행사를 수행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과 상관없고 오히려 그분을 피곤하게 하는 행사가 된다. 엿새 동안 이웃을 돌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을 도와주고 사방에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리고 제7일 안식일에 주님의 집에 성도들과 함께 모여 예배할 때에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안식일 하루만 예배당에 모여서 예식을 갖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가르쳐주신 것이다. 엿새 동안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빛을 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주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사야는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착한 행실이라고 했다. 이사야고 이 빛을 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58:6,7절에 설명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엿새 동안 이런 생활이 실천될 때 안식일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주님 도와주소서.

 

교훈 : 하나님은 안식일 준수자들의 예배가 단지 내적인 활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보며 봉사하는 활동을 포함하기를 바라신다.

 

 

8월 8일(목) 자비와 신실함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비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선지자 호세아의 말(호 6:6)을 인용하시며 책에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찾아서 하나님이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 9:13)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보겠지만 예수님은 돌봄과 섬김의 삶을 사셨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치유의 기적, 그분의 여러 비유는 그런 방식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권장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가장 혹독하게 비평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분의 가장 거친 책망의 대상이었다.

이사야 시대의 신앙인들처럼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궁핍한 자들을 무시하면서도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로 인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보장받는다고 믿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예배와 일치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그와 같은 외식을 거침없이 규탄하셨다.

 

1. 막 12:38~40을 읽어보라. 그들이 “과부의 집을 삼”킨다는 예수님의 언급은 이 목록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것이 예수님이 밝히시려 한 요점인가? 그대는 이런 행동 때문에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게 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막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39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답: 과분의 가산을 삼키는 것은 그들의 종교행사에 헌금하는 과부들의 가난한 돈을 낭비하는 것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잘 알고 남에게 가르치는 그 원칙을 그들은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12:47,48)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가장 두려운 설교는 마태복음 23장이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 사는 자들을 돕지 않는 그들의 신앙에 대해 묘사하셨을 뿐 아니라 그 같은 신앙이 불우한 자들의 짐을 더 무겁게 한다고 간주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 때문에, 때로는 그들의 행동과 배려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마 23:13)는다고 말씀하셨다.

수 세기 이전의 선지자들의 음성을 되풀이하심으로 예수님은 당시의 엄격한 신앙 행위와 그들이 용납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고 있는 불의 사이의 간극을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3:23). 그러면서도 신앙적인 행위의 준수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이셨다.

 

<부가설명> 생활에서 이런 실천을 하려면 신앙적 실력이 있어야 한다. 도움을 베푸는 사람들은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섬기는 사람은 실력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 사람이 쓰러져 있을 때 그를 업고 가려면 업고 갈 수 있는 실련 즉 힘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를 도우려면 도울 재력이 필요하다. 무지한 자를 도우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약한 자를 도우려면 강해야 한다. 예수께서 섬기는 자로 오셨다. 그분은 섬길 실력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실력을 받아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한다. 물론 각각 받은 은사를 따라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할 마음이 있을 하게 되는 행위가 나온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2) 진정으로 할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신다. 할 마음이 있으면 실제로 마음에 있는 그것을 하게 된다. 우리는 마음을 주님께 바쳐서 주신 말씀 따라 충성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6)

 

교훈 : 종교적인 행위만으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보장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예배가 불우한 자들을 돌보며 돕는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8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구호봉사>, 29~34 ‘이사야 58-하나님의 처방’, <시대의 소망>, 610~620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음’을 읽어보라.

“실제적인 경건의 가치를 역설했던 선지자는 수 세기 전에 주어진 권고를 단지 반복했을 뿐이다.… 각 시대마다 여호와의 종들은 형식주의의 습관에 빠지고 은혜 베풀기를 잊을 위험에 빠진 자들에게 이러한 권고를 되풀이했다”(선지자와 왕, 326~327).

“나는 이사야 58장을 우리 백성에게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장을 주의 깊게 읽고, 교회 안에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종류의 봉사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라. 복음사업은 우리의 수고와 너그럽게 드리는 우리의 재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만나면 그들을 도와주라. 굶주린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그리스도의 봉사사업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거룩한 사업은 일종의 자선사업이었다. 우리의 백성들이 어디에서나 이러한 사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도록 격려하라”(구호봉사, 2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예배 행위의 일환으로 공의와 자비를 행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사고의 전환은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한 그대의 접근 방법과 그대의 예배 개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 생활예배에 대하여 자주 생각했다. 

 

➋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율법의 더 중한 바”(마 23:23)를 소홀히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대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마 23:24)켰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 신앙의 실력을 길러야한다. 온전히 성령의 주장을 경험하는 신앙으로 산다면 되지 않을까?

 

➌ 위선이 죄로 간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래도 낫지 않을까요?

※ 착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양만 되고 실제가 되지 않으면 속이는 삶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죄가 된다.

 

요약 : 선지자들은 그 땅의 악행뿐 아니라 특히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악행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예배는 사회적인 불공정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 같은 종교는 위선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포함합니다.

 

작성자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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